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군종 신부 (문단 편집) == 전시 == 교회법 1003조 2항에서는 '''[[사제]]의 의무로 [[병자성사]]를 집전해 줄 것'''을 두고 있다. 즉, 심각한 부상자가 발생하면 거기가 포탄이 쏟아지는 참호든 지뢰와 불발탄이 널려있는 무인지대든 간에 가서 [[병자성사]]를 주어야 한다. 실제 유명한 사례로, [[제101공수사단]]의 카랑탕 전투 때 사단 군종실장 존 말로니 신부(육군 [[중령]])가 시가전 중인 도로 한가운데에서 종부성사[*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는 '[[병자성사]]'가 아니라 '종부성사'였다. [[7성사]] 문서로.]를 집전해 준 것으로 무공 훈장인 은성 훈장을 받았다. [[미국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도 잠깐 나온다. 이 분은 기적적으로 부상도 안 당했다. 정작 그 광경을 보는 101사단 장병들은 전장 한복판을 성큼성큼 걸으면서 종부성사를 주는 말로니 신부를 보면서 미쳤다고 혀를 내두른다. 말로니 신부는 동 드라마 6화 바스토뉴 공방전에서도 전방에 직접 지프차 끌고 와 장병들에게 미사 집전 및 축복을 해준다. [[파일:priest.jpg]] 창작물인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초반 상륙 장면에서도 기관총과 포탄이 빗발치는 오마하 해변에서 죽어가는 미군들 옆에서 종부성사를 주고 있는 군종신부의 모습이 나온다. [[돈 까밀로]] 신부도 [[1차 세계대전]] 때 총탄이 빗발치는 전선 한가운데서 쓰러진 아군 병사에게 종부성사를 주다가 머리에 총을 맞았다.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는 사진과 같이 [[방탄모]]에 군종관임을 표시하는 등 최대한 공격을 덜 받을 수 있게 부착물 등을 추가하거나 하는 배려를 해 주기도 한다. [[파일:TeYePRT.jpg]] 실제로 많은 신부들은 장병들한테 성사가 필요하다면 그곳이 총포탄이 빗발치는 헬게이트라도 달려가야 했다. 사진은 [[퓰리처 상]] 수상작품으로 1963년 [[베네수엘라]] 내전 당시 사진기자 핵터 론돈(Hector Rondon)이 촬영했다. 사진 속의 Luis Padillo 신부는 내전을 무사히 넘겼다고 한다. 사진 기자에 따르면 당시 여러 신부들이 총격전이 벌어지는 시가전 현장을 누볐다고 한다. 근방에 사제가 없으면 옆에 있는 다른 가톨릭 신자가 비신자에게 대신 해주기라도 가능한 임종대세([[세례성사]])와는 다르게, [[병자성사]]와 [[고해성사]]는 [[사제]]가 집전해야 하고, 또한 죽기 전에 해 줘야 교리상 그나마 대죄에 대한 심판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군인이지만 군종장교라서 개인화기가 편제되어 있지 않다. 일단 자기호신용 K-5 권총을 지급받고 자기 총번도 알고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서류상 지급이지 실제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전쟁 나서 진짜 군종장교까지 투입이 되어야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면, 그 전쟁은 이미 졌다고 봐야 한다. 천주교 [[군종병]]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인 [[신부님]]을 보좌하는 업무는 전시에도 당연히 유지되며, 이 보좌 업무엔 [[경호원|경호]]도 포함되므로, 전시에는 총기를 휴대하여 신부님과 같이 다니게 된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